두려움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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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때로는 다른 좋은 이유보다도 불안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는 순간들도 자주 있는 것 같다.

두려움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잠들기 전에도 찾아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낄 때도 있고, 일을 하면서도 느끼고…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잊어버린다. 몰입을 하는 과정에 이르면 나를 채찍질하던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그 과정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몰입에는 자꾸만 끝이 찾아온다. 그러고 나면, 스멀스멀 구석 어딘가에서 두려움도 찾아온다. 몰입의 즐거움, 미래에 대한 설렘의 크기만큼, 두려움도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두려움의 끝

두려움의 끝은 어디일까?

  • 취직을 하면, 퇴사를 하면, 창업을 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제품을 만족스럽게 만들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첫 고객 100명을 만나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첫 고객 1000명을 만나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첫 고객 10,000명을 만나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 그보다 더 큰 성취 — 문제의 해결 — 를 이루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두려움의 출처

아마도, 두려움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두려움의 출처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무지’일 것이다.

  • 미래가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미래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죽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놓칠까봐 두려움’(Fear of missing out)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고도로 가속화된 사회에서 모두가 전력으로 질주하는 분위기를 느끼는 현대인들이 ‘나만 놓고 모두가 떠나가버릴까봐’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왜 놓치는 것이 두려울까? 아마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붙잡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걸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감정은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생존 양식이라고 간주된다. 따라서 두려움은, 살아남기 위해 존재한다.

미래를 전부 다 알고 있다면, 살아남는 방식도 전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미래를 전부 알고 있다면 어떨까.

  • 앞으로의 미래 전부 다 알고 있기 VS 그냥 살기

아마, 대부분의 두려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렘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복권 당첨번호를 미리 알고 있다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권 당첨 이후의 미래조차 미리 알고 있다면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모든 걸 다 가지게 되면 무슨 느낌인지, 그런 걸 다 미리 알고 있다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럼 당신은 ‘바꾼 미래’도 이미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신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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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쩌면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두려움의 출처가 ‘무지’에 있다면, 두려움의 반대말은 다른 게 아니라

‘호기심’

이다. 쫓아오는 두려움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눈앞, 저 멀리 결승선에 보이는 풍경을 끊임없이 추구하기로 하면, 두려움을 잊어버릴 수 있다. 등 뒤를 돌아볼 때 가끔씩 다시 만날 수야 있겠지만서도.

따라서 모든 여정은 ‘모르는 게 두렵다’를 ‘알고 싶다’로 바꾸고자하는 시도의 연속인 것 같다.

아마, ‘몰라도 괜찮다.’, ‘알 필요 없다.’라는 태도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형태를… ‘권태’나 ‘지루함’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만약, 한 가지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면, 무엇을 알아내고 싶을까?

끊임없이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알게 되는 만큼 모르는 세계가 펼쳐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