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고등학생 때부터 창업을 생각했다. 처음 취업했을 때, 그리고 그 전부터 1인 개발 사이드 프로젝트를 자꾸만 자꾸만 기획했고, 개발도 했고, 그에 필요한 공부를 했다가 접었던 적도 엄청 많았다. 근데 결국 창업하지 않았다. 타협이 훨씬 편했으니까. 직장이 훨씬 안전했으니까. 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나만의 문제와 고객을 찾는 일에는 계속해서 주저했다. 안전과 편안함이 없는 길은 고통스러워보였고, 고통은 원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5년동안이나 창업을 미뤘다. 근데 나는 지금, 진짜로 창업을 하겠다고 맨날맨날 큰소리 치고 있다.
요즘엔 서양철학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니체, 쇼펜하우어, 아들러, 프로이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현대 사회와 스타트업 여정의 여러 부분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와 관점들이 있다. 니체가 제시한 이상적인 인간상 Übermensch는 스타트업 창업 바이블 제로 투 원을 통해 피터틸이 제시한 성공한 기업가의 정신상 ‘인사이더인 동시에 아웃사이더’, ‘능동적 아웃사이더’와 유사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책 많이 쓴 벤쳐투자자와 창업자들이 으레 말하는 창업자의 모습은 많은 부분에서 서양철학사가 오래전부터 제시해온 그것들과 인간상, 철학관을 공유하는듯 하다. (어쩌면 이같은 철학체계 자체가 영원히 되풀이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지독한 사람이 할 법한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의 말을 신뢰하고 공감한다. 내가 지금 이 장소에서 창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기적,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겪는 모든 거절이나 무관심은 내가 맘껏 누린 기쁨의 크기만큼 고통스럽다. 프로그램만 개발하고 데이터만 뽑아내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도, 해일을 거의 매일같이 겪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실은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한 것이라서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반갑다.
모든 창업자가 나와 같은 격정을 겪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편한 길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창업하지 않는 길이 편한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아이디어와 비젼을 펼치는 창업자가 되는 게 아니라 타인과 아이디어와 비젼을 공유하고 지지하는 창업 팀원이 되는 게 비용대비 효율적인지도,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나에게는 상상만해도 너무나 편안하고 달콤해서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다른 게 아니라 고통을 원한다.
나에게는 에어백과 쿠션, 안전벨트가 없는지도 모른다. 있었던 것들조차 내가 선뜻 나서서 잘라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가진 모든 좋고 나쁜 조건과 불필요해보였던 수식어 전부 가리지 않고 환영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편한 길을 걷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사명을 다하고 싶은 마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라도 기꺼이 걷고 싶다. 내가 퇴사한 이유, 내가 창업하는 이유는 ‘최선을 찾기 위해서’였으므로,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면 두렵더라도 마주하고 싶다.
인간은 기댓값이 같을 때 더 큰 이득을 추구하기보다 손실을 회피하는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데, 나는 지금 손실조차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가진 걸 잃어버리는 것보다 꿈에 그리는 미래를 잃어버리는 편이 천 배는 더 피하고 싶다.
기왕 퇴사를 했다면, 만에 하나 창업이 사실은 운칠기삼의 도박이라 할지라도 안전한 도박은 바라지 않는다. 가장 큰 판돈을 걸고 최선의 도박을 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이름이 다운인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크고 중요한 도박에서 가장 크게 이기기 위해서, 운이 많다는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실패란, 내가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 세상의 그 누가 평가하더라도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실패라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비단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닌 그 누구의 이야기도 함부로 실패라 평가할 수 없다. 실패는 온전히 실패자의 몫이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누구나 영원히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몫으로 주어진 고통조차 온전히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 나는 창업을 택했다.
거절조차 즐거운 일이며, 감사한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내 인생과 현재의 창업 여정이 고통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고통은 즐거움, 쾌락, 행복과 끊임없이 교차하는 관계에 있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언제나 가장 행복한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때때로 힘겹지만, 그만큼 그 힘겨움을 넘어선 세계를 상상할 때마다 설레고 기쁘다.
나의 인생은 목적지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눈감는 순간 행복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마저도 감사함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