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편지


컴퓨터정보통신 기능반 기능실 2017

Day 0

그 동안 저에게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생각들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Data Scientist (한국에서는 데이터 과학자 라고하는데,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라는 일은 시작한 이유는 한 문장을 읽고나서부터였습니다. ‘My life goal is to lower the barriers of knowledge through data.’ 이 이야기는 이후로 지독할만큼 많이 떠올렸던 제가 존경하던 (당시) Data Scientist 은정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문장이였습니다. (멋대로 자꾸만 롤모델로 언급해서 죄송해요, 은정님.)

문장의 의미는 간결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데이터를 통해서 지식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하는 말이었죠. 제가 원했던 인생의 목표가 정확히 그것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눈을 번뜩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내가 좋자고 시작한 일을, 어떻게 하느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서는 순전히 나만 좋을 게 아니라 세상에 한 줌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에는 그분의 그 말이 너무나 멋져보였고, 내가 그 일을 너무나 원하는 것 같아서 Data Scientist가 되었던 것 같아요.

Day 1

저는 고등학교만 졸업했습니다. 대학교 전공이랄 것은 없었지만, 학교 내의 컴퓨터정보통신 기술영재반 활동을 하면서 컴퓨터 공학이나 네트워킹 같은 것들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3학년이 되어서는 공부 분야를 데이터 분야로 돌려서, 그와 관련된 대회 (2017 지방기능경기대회 종목: 빅데이터)에 나가서 상을 타보기도 하며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지자체장님이 저에게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셨을 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금메달

그렇지만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배우지 않았고, 단지 열정만 가득했던 저였기에 내실이 부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랬던 저를 믿고 Data Scientist로 받아주셨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의료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어요. 저는 기술을 통해 사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들 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시드펀딩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던 그 회사에서, 저는 CTO님의 직접적인 온보딩을 받으면서 딥러닝 기술을 어떻게 실무에, 제품에 적용할 수 있을 지 끊임없이 가늠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회사는 꽤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것 같아요. 제가 퇴사하던 시점에 회사의 기업가치는 입사 시점의 수십 배는 되지 않았을까요? (정확히는 모르지만요.)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저도 정말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어요.

Day 2, Day 3, Day 4

그 이후로도 저는 다양한 스테이지와 도메인, 상황에 처한 스타트업을 경험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하는 바는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기술을 통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고, 내게 그런 기술이 있을 것이다’ 이 믿음만이 저를 계속해서 동작하게 하고 성장하게 했다고 믿었죠. 사람과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TTS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다녀보기도 하고, 집에서 카메라를 켜고 운동하는 홈트족들의 자세를 판독하고 교정해주는 인공지능 PT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다녀보기도 했어요. 어느 곳에서나 우여곡절이 있었고, 구성원으로서 잘했던 일도 있었고 못했던 일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저는 의미를 찾고자 했고,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인간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사랑의 욕망을 해소한다, 만남을 재밌고 쉽게 만든다 등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소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의 Data Scientist가 됐어요. 여기에서 경험한 성장의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어요. 내가 만드는 기능들이, 내가 쓰는 코드들이 실제로 수 많은 유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 영향이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이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력 덕분에 사랑을 하게 되었다, 만남의 기회가 창출됐다, 하는 바람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정말로 조금이라도 그런 세상이 된 것이겠죠? 확신할 수 없지만, 여전히 바람은 간절해요.

Back to Day 0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모험의 끝에 저는 제가 다시 첫날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저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요.

그동안 해왔던 일이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냐고 묻는다면 단 한번도 그렇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언제나 퇴사를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제가 한 일이 좋았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으리라 믿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오직 하나에요. ‘무엇이 최선일까.’ 제가 할 수 있을 많은 일들 중에서 어느 일이 가장 가치있고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까 하는 궁금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오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최선이 뭐나면요, ‘창업, 하겠습니다.’ 에요. 저의 <고객>은 언제나 저의 동료 시민들인 것 같았어요. 어떻게하면 그들이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내가 받은 감사함을 보답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을 하기 위해서 저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는 저와 제 동료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당연한 것들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저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한 가지를 제시하기 위해서, 창업을 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여정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집중하게 될 문제 자체가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지금보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If my life is an optimization process, let me be an oscillating gradient maximizing gratitude.

저의 삶이 최적화의 과정이라면, 감사함을 최대화하기 위해 요동치는 그래프의 한 점이 되게 해주세요.

어설프기도하고, 실수도 많았겠지만 5년의 시간동안 다운과 함께 일해주신 많은 동료분들이자 많은 가르침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