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까요


커피. 아이패드에 애플펜슬. 2020.08.15

최근에는 ‘제법 안온한 날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의 저자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응급실에서는 하루에도 수 많은 중한 환자들이 들어오고, 의사는 수도 없이 그들에게 생명이나 생활에 크나 큰 지장이 있는 병과 죽음과 생명을 목격하고 이야기한다.

CT나 슬라이드를 보며, 질병의 진단에 사용되는 숱한 지표들을 읽어나가며 때때로 환자들보다 먼저 그들의 운명을 이해하곤 하는 의사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괴로워서 울다가도, 나중에는 그것이 적응되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담담하게 환자 앞에 서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책은 이야기했다.

나도 그걸 보았던 적이 있다. 의료영상을 다루는 회사에 다닐 때에 가장 흔하게 입수했던 영상들은 중한 환자들, 주로 노인들이 찍어왔던 뇌의 MRI 영상이나 CT 영상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주 건강하고 젊은 환자의 MRI는 연구의 목적이 아니고서야 그리 많이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아왔던 많은 이름도 무엇하나도 내가 알 겨를이 없는 환자들의 영상에서 나는 젊은 사람과 나이들어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출혈성, 허혈성 뇌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뇌가 어떻게 다른 지 보아왔다. 나는 그런 영상을 촬영하는 현장을 목도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영상들을 보면서도, 그런 것을 더 잘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크게 감정적으로 생각 해볼 일은 없었지만, 영상의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데이터의 한참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도, 치매로 지금도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다. 그들의 보호자들이나 병원의 사람들, 아픈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 지 사무실에 앉아있던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회사의 미션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만들고 있던 제품을 생각하면서 이따금 떠올렸다. 지금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면 좋겠다고.

한 번은 노인성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의 임상시험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치료법은 연구가 활발하고, 아직까지 돈을 지불하고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단계의 치료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던 무언가였다. 그것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어떤 환자는 실제로 증세가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회사가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치료법이나 제품이 자아낸 결과’라는 전개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노인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참 많이 외로움을 타고, 임상 연구원이 그들을 찾아가 말 한마디라도 섞으며 치료를 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외로움이 해소되어 증상이 개선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이런 아주 복잡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문제들, 병원에서 진단을 잘하고 못하는 상황, 수술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들의 중요함과 더불어서 정말로 간단하고 일상적인 일들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나의 롤모델님이 ‘정보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것’이 자신의 미션이라 적어놓으신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첫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 한 문장이 너무나 멋지고 존경스러웠던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 라든지, 좀 더 말초적인 것이 사실은 더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고, 그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나는 이런 명분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좋다. Kurzgesagt에서는 이런 마음을 ‘이기적 이타주의’라고 이야기 하더라.

최근 나는 홈트레이닝과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면, 단순히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좋은 일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사용해주는 분들이 탄력을 받아 운동을 열심히 한다거나, 그래서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산다거나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일을 할 때에는, 그저 내 일에 묵묵히 집중하고 그렇게 거창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을 언제나 한 켠에 두고 있다. 내가 주로 하는 일들은 좋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이고, 그것을 참 잘만드는 것은 ‘더 포괄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어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가 인종차별을 한다든지, 어떤 추천시스템이 이용자에게 한정된 극성의 추천 결과만을 제공하여 편견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상황들을 떠올린다. 막을 수 있는 일들이다. 내가 만드는 제품이 잘됐으면 좋겠고, 그 제품이 많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방식으로 내가 돈을 버는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아마존에서는 앱을 업데이트하면서 릴리즈노트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Each bug fixed makes for a better app on your phone. And better apps mean happier people. And happier people equals a better world. So I guess you could say that while you’re going about your day today, we have developers working hard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one bug at a time. (의역) 하나의 버그픽스가 더 나은 앱을 만들고, 더 나은 앱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더 행복한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발자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버그를 고치며.

낯간지럽고 진부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 생각이 일이나 삶을 더 즐거운 것으로, 감사한 것으로 만들어 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내가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해준 것은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 적힌 일과 삶에 대한 글들이었고, 그래서 나도 그런 분들의 흉내를 내어 글을 쓴다. 나는 어느 순간에, 어떠한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내가 누군가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일수록 한없이 무해한 사람이 되고싶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은 참 헌혈이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헌혈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