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2016년 이야기


2016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아니 딱히 바빴던 건 아니지만 많은 일을 했던 한 해였다. 고등학교 3년간의 종착점을 정할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해준 해이기도 해서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아쉬운 해인 것 같다.

올해의 사건들

나의 2016년은 대략 3개 정도의 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그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대회를 준비했던 1-4월,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4-7월, 무작정 경험하던 7-10월, 새로운 세계를 맛 본 10-12월.

1-4월 : 지방기능경기대회

나는 컴퓨터정보통신(https://comjung.github.io)이라는 기술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주말에도 방학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학교에 남아 네트워크와 시스템 관리를 공부했고, 공부했던 것들로 4월에 대회를 나갔다. 처음엔 내가 아주 잘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풀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심사위원을 설득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으며,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다음 날의 과제를 망쳐버리기도 했다. 결과는 25명의 출전자중 10위 근처였더랬나,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 때는 엄청 서럽게 울었다. 내가 할 줄 알았던 걸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쉬웠고, 내가 했던 걸 틀렸다고 말하는 게 너무 억울했고, 그냥.. 그랬다. 1년 동안 준비했으니까, 서러웠다. 거의 한 시간을 내리 울었고 다음 번엔 기어코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생각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아 또 이 시기엔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어떤 사건이 있었다. 3월에 등장한 구글의 ‘알파고’라는 녀석이 나에게 처음으로 기계학습과 데이터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해줬다.

4-7월 : 사람

대회가 끝나고 잠시 휴식기간이 주어졌다. 중간 중간 학교 시험은 있었지만 그런 건 당연한 듯이 금방 지나가더랬다. 그리고 6월의 중순, 나는 일본 아사히카와 공업전문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다.(내가 이 학교에 온 큰 동기중에 하나다.)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일본어를 말했다. 중간에 합류했던 한국인 통역보다 내가 많이 통역했다. 연락은 뜸하지만(눈치를 보는건지 어떤건진 모르겠지만 한국인 쪽에서 먼저 말 걸지 않으면 잘 답을 안 주는 것 같다.) 거기서 만난–내가 대화했던– 사람들은 모두 착했고 홋카이도가 비교적 시골이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때묻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예의 바른(建前?) 사람들이 많았고 음식이 엄청나게 맛있었고 그냥 행복했다. 나는 평상시 얌전했지만 외국어로 말하고 있던 탓이었는지 같이 갔던 친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말도 많이 했던 느낌도 든다. 앞으로도 계속 라인을 주고받으며 떠들고 싶다. 얘내가 너무 눈치를 보거나 정이 식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계속 떠들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6월 말에는(?) 아니면 7월부터 나는 아마존 웹서비스에 회원가입을 하게되고 여러가지로 신세계를 맛보게 된다.

7-10월 : 다 해보기

아마존 웹서비스와 깃허브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내가 평상시에(컴퓨터정보통신) 하던 공부와 사뭇 다른 것들을 많이 다뤄봤다. Jekyll블로그를 통해 front-end 디자인도 해보고, 도쿠위키, 미디어위키, 워드프레스 등등 별에 별 플랫폼을 다 돌려보고, 웹 서버의 프록시 기능을 활용해서 미러링 사이트도 만들어보고, 개인용 깃 저장소도 만들어보고, docker도 사용해보고, 개인용 웹메일도 만들어보고, 글자수 세기 사이트도 만들어보고, 커뮤니티도 만들어보고, 라즈베리파이도 만져보고, 뭐 별에 별 일을 다 해봤다. 꽤 재밌었던 것 같다.

9월에는 교환학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 친구들이 우리 학교로 일주일 동안 찾아왔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 친구들과 같이 돌아다녔고 6월 못지 않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친구와는 요즘 시대 답지 않게 라인이 아닌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시점에는 일본에 갔다 온 여운이 가시지 않아 모두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일본 사람들과 많이 떠들었다.

10-12월 : 진로

여러가지 일들이 지나갔고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던 것 같다. 여전히 AWS를 가지고 놀았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기계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보다가 어떤 데이터 과학자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어째선지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사람들 중에 가장 멋있어 보였고 그것을 분기점으로 나는 갑작스레 데이터 과학자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직접 이메일을 보내 물어보고, 많이 찾아봤다. 중간에는 킨텍스에도 다녀왔는데, 어느 대학교에서 만든 NLP프로젝트 부스에서 이건 어떤 걸 써서 만들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프로젝트 진행자 분들께 이메일을 보내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있자 나는 이메일만 보낸다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고, 그만큼 내가 간절하고 상대가 그럴만한 여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밑바닥 부터 시작하는 데이터 과학이라는 책을 주문했고, 여태까지 공부하던 시스템 운영이나 네트워크, 웹개발을 손에서 놓고 데이터를 공부하기로 했다. 또 이 시기에는 발음하는 게 재밌는 독일어를 공부해보기도 하고 독일인 친구도 만들었다. 언어를 배우면서도 계속 이대로 기계번역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정말 국경이 아무것도 아닐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목표는 실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크게 잡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믿음을 갖고 목표를 세우려고 한다.

  1. 데이터 과학자가 되자. 내가 가장 즐거운 일을 하자.
  2. 태블릿 PC를(?) 사자. 좋은 e-ink 디스플레이가 나온다면 그런 걸 구매해서 많은 것들을 전산화 해보자.
  3. 운동을 좀 하자. 유산소 운동으로. 활동적인 걸 하자(?)
  4. My year in data를 나도 해보자.
  5. 제일 좋은 랩탑을 하나 갖고 싶다.
  6. 도쿄, 홋카이도로 놀러가고 싶다.

2017년은 지금보다 더 바쁘게, 그러면서도 더 많은 일을 해내며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더 챙길 수 있었음 좋겠다.